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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회고

takeU 2023. 1. 13.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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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가장 한가하지만 바빴고, 게으르지만 열심히 살았고, 죽고 싶다가도 살고 싶은 그런 한 해였다.

매년 회고를 쓰려 앉으면 지나간 한 해가 흐릿하고, 그저 흘러가는 한 해였다는 느낌이 드는 게 싫어서, 올해는 이슈가 있을 때마다 월별로 기록해놨더니 그래도 뭐 하긴 했구나 싶으면서 가득 찬 느낌이 드는 게 새롭기도 하고 써놓길 잘했다 싶다.

오히려 이런저런 경험들에 대한 기록을 사건 위주로 써놔서, 텍스트로 되짚어보는 과정에서 내가 어떤 감정이었는지가 명확하게 안 떠오르는 게 조금 아쉽기도 하고, 평소랑 다르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정리가 안 돼, 글을 쓰려고 앉았다가 접는 걸 몇 번은 반복한 것 같다.

 

1

상반기엔 낯선 사람들 사이에 껴야 하는 상황이 계속 나왔는데, 새로운 세계에서 주변을 보며 먹어버린 나이를 체감해버렸고, 날고기는 사람들이 깔려있는걸 보고 본능적으로 비교하면서 열등감이 무럭무럭 자라나 버렸지만, 그래도 상반기를 다 보낼 때까지는 잘 숨기고 유쾌한척하면서 아득바득 쫓아가는 느낌으로 버틴 것 같다.

이 시점에, 나답지 않게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안 해봤던 것들도 해보고, 안 가본 곳들도 참 많이 돌아다녔던 것 같은데, 덕분에 나름 여러 방면의 데이터베이스를 쌓은 것 같고, 내가 사람들한테 어떻게 했는지, 하는지, 해야 하는지까지 생각해보고 참 반성도 많이 했다.

나는 평소에 단기목표를 세우면서 움직이는 편인데, 갑자기 예상하지 못했던 벽들이 눈앞에 너무 많이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해야할게 산더미처럼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히려 해야 할 게 너무 많아지니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2

막학기가 끝나가면서, 졸업을 앞둔 나는 학생 신분이라는 치트키가 없어졌고 본격적으로 백수 생활을 시작했다. 사실 그전에도 거의 비대면으로 수업을 들어서 상황이 크게 달라진건 아니었는데,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나에 대해 많이 돌아보게 되었고, 이 시점을 기점으로 누적된 스트레스가 염세적 마인드 장착으로 발현되었다.

그때부터 하고 싶은 게 없어졌고, 삶에 아쉬움이 남지 않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뭐 당장 죽겠다는 그런 건 또 아니지만, 그냥 다 귀찮고 내 존재가 너무 무가치하다는 그런 느낌.

막연하게 "나는 아니겠지"라 생각했던 걸 내가 전부 하고 있으니까 현타도 많이 오고 슬펐다.

그러면서 주구장창 음악만 듣기 시작했는데 노래로 위로를 받은 건 아니고, 좋은 노래를 찾는 재미에 이것저것 막 들었던 것 같다. 솔직하게 남들이 많이 안 듣는 음악이 좋다고 느껴지는 내가 멋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특별하고 싶었던 사람이 나이를 한살 한살 먹어가면서 지극히 평범하다는것을 깨닫고 있었는데 그나마 저런 거에서라도 특별해지고 싶었나 보다. 생각이 어두워지니까 없던 중2병이 생겨버리네..

물론 지금은 온전히 좋은 음악을 많이 찾고 싶어서 듣는다.

아 그리고, 운전을 시작했는데 엄청 조심스럽게 안전운전 하는 스스로를 보고 죽고 싶은 건 아닌가 보다 싶어서 좀 어이없긴했음ㅋㅋ..

아무튼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열등감으로 떨어지던 자존감이 바닥을 찍었다가, 천천히 위로 올라가는 경험을 하고 있고, 여기서 근거 없는 자신감과 자존감이 조금씩 생겨남과 동시에 정서적으로 좀 안정이 되는 시기가 찾아왔다.

 

3

크게 돌아보면 상반기는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었고, 하반기는 우월감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겪은 것 같다.

자기 파괴적인 열등감도 아니었고, 타인을 깎아내리면서 느낀 우월감도 아닌, 내 행동의 뿌리들이 저 단어들로 설명이 되는 패턴을 보여준 것 같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비교를 안 한 게 아니고 그냥 내 입맛에 맞게 내가 나아 보이는 부분만 비교했고, 약간은 뒤틀린 우월감으로 바뀌게 된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좋은 과정이었다고 생각이 드는 거 보면 그래도 발전적인 사고를 하긴 했나보다 싶다.

처음은 의도치 않은 선택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적응하면서, 내실을 다지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 감정이라고 포장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4

온전히 나에게 시간을 쏟아본 게 얼마 만인가 싶다. 아마 처음인 것 같다.

시간을 쏟았다는 게 스스로를 위해 거창한 무언가를 했다는 아니지만, 언행 하나하나를 돌아보며 나에게 필요한 부분을 채워가는 데 노력했던 것 같고, 결과가 꽤 만족스럽다.

그럼에도 여전히 오만하다는 얘기는 종종 듣는다.

근데 왠지 그 말 들으면 기분이 좋은 건 내가 이상한 건가.

아마 나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생각해서라고 받아들이는 게 만족스러운 해석일 것 같다.

이것 또한 오만이지만ㅋ

 

5

글을 다 쓰고 읽어보며 느낀 점은, 한 문장을 길게 가져가고 싶은 이유로 쉼표를 남발하는 경향이 있고, 문맥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 것 같다. 다 써놓고 읽어보면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들어 몇 번을 고쳤는데도 아쉽다.

또 글을 쓰면서 피식피식 웃음이 나는 구간이 몇 개 있었는데, 재밌는 기억과 고마운 기억을 심어준 사람들에게 참 감사한 한 해였던 것 같다.

연말이기도 하고, 면접 결과를 기다리는 시점에서 아무 일도 손에 안 잡혀서 방황하면서 시간 보내고 있는데, 붙으면 좋겠다. 기대 안 하려 해도 발표날이 기다려지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올해는 꽤 특별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내년은 올해보다 특별하진 않아도 행복한 한 해를 보내고 싶다.

2022.12.27

 

+

드디어 기다리던 면접 결과가 나와서 맘편히 글을 올릴 수 있게 된다.

이미 2주나 지나버린 2023년이지만 나의 한 해는 이제 시작인 것 같다.

올해도 화이팅!

2023.01.13